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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 피정(1920년 12월 첫 금요일)

handmaids 0 1,142 2010.09.02 11:46
월 례 피 정
1920년 12월 첫 금요일

결심 :
- 기도 : 나는 분노의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첫 동요를 수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파악했고, 나의 무능력과 특히 하느님께로 향하는 나의 기도가 미미한 것을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을 분심 속에 파악했다. 나는 절대 분심과 냉담을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좀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로 한다.
- 일 : 규정되어 있거나 예정되어 있는 것은 규정된 시간이나 정해진 시간 내에 한다. 방법에 따라 행동하고 너무 많이 시도하지 않는다. 하고 있는 일을 초자연화시키고,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 연혼들! 예수님-성체께 일치.
- 순종 :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봉사하는 일에 너무 자의적으로 빨리 나서지 않는다. 그 후에 후회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관계 : 분열의 동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제3자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호의를 사려하지 않는다. 집 안에 있는 어른들에 대해 명시적인 존경을 표한다.
- 대화 : 지도자들이나 장상들, 동료들에 대한 비판을 삼간다. “네 혀로 인해 일을 그르치지 말라.”(Noli citatus esse in lingua tua.). 졸속한 행동을 피한다.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지도 못하게 한다. 불쾌감을 주는 토론을 피하고 가능한 한 겸손하게 양보한다. 항상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분에 따라 그들을 낮보지 않는다.
- 특별 성찰 : 더 구체적으로 한다. 내가 투쟁해야 될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실천 사항, 즉 자의성과 경망함에 대해서만 하기로 하고 특히 표현에 대해서도 한다. 오락으로 시작한다.
- 기도 전 새벽 시간 : 하느님의 시선 아래에서 하루를 예상해 둔다. 해야할 일들, 어려운 일들, 피해야 할 기회들, 조심할 것과 결심할 것들,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예비적 성찰을 한다.
- 전반적으로 : 기분을 한결 같이 고르게 갖도록 한다. 친절하고 명랑하고 침착하게 지낸다. 경박하고 어린 아이처럼 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들으며 민감한 느낌을 나타내는 너무 자의적인 면에도 지양한다.
- 특별 규칙 : 변덕스러운 기분을 피하고 좀더 정확성을 기한다.


12월 8일 - 무염 시태
나의 결점들을 고치기 위해, 특히 대화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다보니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기심을 없애려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습관들은 전혀 다른 반대의 습관을 길들이다가 없어지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돋보이게 할 궁리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기회에 다른 사람들을 돋보이게 할 방법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따라서 나는 교만심과 자존심과 투쟁할 것이고 애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악을 물리치려할 뿐만 아니라 덕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특히 연초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고민해 왔다:
나는 언제 이 신학교를 떠나게 되나? 이런 생각은 나의 사기를 꺾고 신경질 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물리쳐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와 반대로 신학교의 감미로움, 그 가치와 행복을 느낀다. 이곳은 나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명상 안에 하느님을 더잘 알게 되고 그분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나의 규칙에 대한 순종에 더잘 적응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물론 내가 품(品)들을 빨리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상하고 거룩한 생각은 내가 그 품들을 받을 때 더욱 충만해 질 것이고 하느님께 더 완전히 봉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 품들을 잘 준비하고 잘 받겠다는 마음가짐은 그 품들이 나에게 가져다 줄 영예와 기쁨에 대한 생각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미래의 꿈을 어루만져 보고, 내가 맡게 될 모든 다양한 활동, 풍요로운 사제직과 더불어 확장된 영향력에 대해 머리를 굴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그런 꿈들과 상상은 잘못된 것 같다. 사제직 수행에서 지쳐있는 상태, 즉 예기치 않은 일들과 변화들로 가득한 소모적인 상황을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명상과 규칙, 예를 들면 교수 활동과 같은 내적인 활동을 더 수월히 할 수 있는 상태를 원해야 되는 것 아닐는지... 내가 사제직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물질적인 이득과 심심풀이 오락에 빠지게 되고 그늘과 침묵 속에서 나 개인의 만족을 위해 있게 된다면 나의 삶은 더이상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나의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보다 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목적에 가장 적절한 방법들은?


성탄
- 이상의 관찰에 의거해서 앞으로 내가 지켜야 할 점은 :
1) 교실에서나 영적 독서에서, 식당에서 너무 과잉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한다.
2) 영적 독서 시간에 졸음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지 않는다.
3) 특히 성당에서 신중하게 행동하고 조심해서 걷는다.
4) 제의방 일에 필요한 시간 이상을 허비하지 않는다.
5)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임에 갈 때는 지각하지 않는다.
6) 장상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춘 호칭으로 불러줌으로써 좀더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빈축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한다.
7) 어딘가 한 가지에 지나치게 중요성을 두지 않음으로써 허영심과 소심성을 피하도록 한다.
8) 사람들이 이미 지적해 주었던 것으로서 나 자신에 대한 큰 만족과 교만심을 나타내는 그 거만하고 냉정한 태도를 지양한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을 조심한다.

이상의 모든 정확한 지적들은 내가 아직도 좋은 모법적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내가 아직도 나 자신을 믿고 있으면서 허영심이 많고 교만하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나는 외명상으로 보이는 선하고 자애로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아주 즉흥적이고 산만한 기분으로 서둘러 살아왔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명절 방학을 끝내고 귀교
방학동안 나의 품행에 대한 성찰은 아래와 같은 지적들로 요약된다 :
1) 하느님께 대하여 : 나는 아침 기도를 쉽게 생략하고 저녁에 하는 성체 방문을 생략함으로써 주의를 소홀히 했다. 그 이유는 낮동안에 일하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멋대로 방만했기 때문에 다른 경건한 신심 행위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또 다음 날에 할 기도 주제를 준비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날 아침에 하는 것도 생략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방만한 기분과 사전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나는 거의 매일 짧은 성무일도를 드렸고 그것도 저녁 시간으로 미루다시피 했었으니 나의 처방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다. 따라서 규칙적인 아침 기상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매일 되풀이되는 변덕스러운 기분에 이끌려 가는 생활에 규칙도 없어졌으니 영적 독서와 성서 읽기는 보통 생략되었던 것이다.
2) 부모님에 대하여 : 쉽게 버럭 화를 내고 안절부절하는 태도, 심한 말투와 고약한 태도, 공연히 침묵하는 버릇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은 심각한 이기주의와 감사할 줄 모르는 성격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이같은 결점들의 이유는 즉흥적인 성격, 말이나 행동에 앞서 생각이 부족한데서 온다고 본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나와 똑같은 사고 방식과 똑같은 관심, 똑같은 필요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식으로 그들을 밀어붙이고 강요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보는 방식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위해 헌신했던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내가 그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기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겠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 내가 그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도 찾아 보아야 하겠다. 나는 신뢰 있고 존경스러운 마음, 지극히 단순한 마음과 큰 애정으로 그들을 대해야 하겠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음 방학 시작 때부터 아주 확고한 결의로 실천하도록 다짐할 것이다.
3) 본당 장상들에 대하여 : 예의가 부족했다. 특히 내 편에서 친절해야 하는데 부족했다. 아직도 실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편지들 속에 드러난 지나친 즉흥성과 활동 안에 보이는 많은 이기주의이다. 또 품행과 대화 면에서 그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4) 다른 어린 신학생들에 대하여 :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던 것들, 또 편지를 통해 약속했던 모든 시간을 할애해 주지 않았다. 편지들을 보면 아직도 내게는 지나친 즉흥성과 활동 안에서 보이는 이기주의가 심각하다. 또한 품행과 대화 면에서 나는 그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5)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 보다 쉬운 조심성을 확인했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겠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에서도 아직 즉흥성이 많았다.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비판했다.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진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너무 빨리 나 자신을 투신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론 : 신학교에서 전체 규칙과 나의 특별 규칙에 습관되도록 노력한다. 모든 변덕스러운 기분을 피한다. 동료들에게 자애로운 애덕을 실천한다. 열성과 포기의 정신을 실천한다. 나의 모든 장상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도록 하고 그들을 애정과 존경으로 대한다.


1921년 1월 16일 :
며칠 전부터 좋으신 하느님께서 나를 성화(聖化)의 길로, 더욱 깊은 성화의 길로 부르시는 것 같다. 규칙이 나에게 요구하는 아주 미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해 실행함으로써 완덕을 실천할 것이다. 나는 침묵, 명상, 감각과 시각과 청각, 특히 언어에서 금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더욱더 좋은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많이 기도해야 하고 또 하느님의 초대에 성실성을 보이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1921년 1월 19일 : 성 가정 축일
예수님 - 성 가정을 이루고 있는 그 거룩한 조화의 동기와 목적을 확인한 다음 나는 또다른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므로 어디서나 결합의 원칙이 되고 싶지 무질서에서 나오는 불화의 씨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를 위해 나는 어쩌면 나의 주요한 열정일 수도 있는 독립적인 성격을 고쳐야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이 점에서 얼마나 조심을 했어야 했고, 장상들의 명령에 토론 없이 순종하기를 얼마나 어려워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내가 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했었는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모든 것을 순명의 정신으로 나의 의지와 사고에 대한 포기와 겸손, 그리고 온화함과 애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특별히 장상들과 동료들에 대한 비판을 피해야 한다.


1921년 1월 28일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축일 전날
성 프란치스코의 온유함은 약점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그의 온유함은 일단 결정한 것에 대해 변함이 없고 실행 면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것이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실제로 하느님의 뜻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것은 억제했으며, 인간적인 생각들은 단호하게 물리쳤다. 그리고 그는 잘 해보려는 의식에 대한 확신이 서있었으므로 결코 실망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켰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사적인 만족을 찾으면서 화를 내고 조급하게 굴지 않았던가... 수시로 변하는 변덕쟁이 기분으로 생각 없이 결정하고 나서 또 초자연적 정신 없이 내린 그 결정에 너무 치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실행 처음부터 흔들렸거나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이 고집은 진실한 확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고집이었다. 그러니 이제 나의 모든 결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찾기로 하고, 나의 본성은 억제시키고 인간적인 생각들은 중요시하지 말아야 한다. 실행에서는 변덕부리지 않고 항구하게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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