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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례 피 정(1921년 3월 6일)

handmaids 0 1,074 2012.01.16 15:20
월 례 피 정
1921년 3월 6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 전날



지도 신부의 의견에 따르면 나의 주된 정렬은 지나칠 정도로 활달한 상상력에 의해 빚어진 자기 사랑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정렬과 대항하여 나 자신에 대한 호의와 자기 존중을 피해야 한다. “나를 새롭게 하시어 결코 당신의 기분을 상해드리지 않게 하소서,”(Noverim me ut despiciar me). 나는 이 자기 사랑에 수반하는 욕망과 싸우는 동시에 동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을 기뻐하고 또 그들이 내게 베풀어주었듯이 내가 그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줌으로써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 나처럼 그들이 자행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보며 슬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을 초자연화시키고 성 토마스처럼 끊임없이 하느님의 시선 아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사제 생활의 중심이 될 예수님-성체께 일치시키고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기도의 정신 안에 머물러 있게 한다. 즉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 안에, 열심한 기도의 감정 안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 주의와 깊은 존경심 안에 겸손해야 하고, 신뢰 안에 긴장하지 않고 단순하며, 변덕부리거나 불규칙한 기분이 아니라 끈기 있게 항구한다.

관계 안에서, 동료들과 이웃들 안에서, 그들의 영혼 안에 현존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본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영혼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셨고 그들을 위해 고통을 겪으셨다. 즉 죄인들, 마음이 아픈 영혼들을 다시금 그분께로 인도하여 봉헌해야 한다.
나는 내적인 방심을 피해야 할 뿐아니라 나의 사례가 동료들에게 쉽게 번지는 방심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표면적인 방심도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위해서도 꼭 지켜야 할 것은 이 방심이 빚어내는 무서운 경과들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은총을 소홀히 할 수 있는 등의 여파를 막을 수 있다.

오락에서는 지나친 과도를 피할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생각에서 나오는 내적인 초자연적 기쁨이다. 흩어지지 않고 오롯이 보관되어 있는 기쁨, 기분에 따라 이동되지 않고 어디서나 전파될 수 있는 항구한 기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의 동료들 안에 에도 이 기쁨이 생겨나게 해야 한다!

신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소홀히 했던 점들을 눈앞에 그려본다. 내가 그 어떤 은총도 상실하지 않고 소홀히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많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나는 다른 모범생으로, 전혀 다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파베르 신부(Père Faber)에 관한 독서에서 내가 배운 것은 완덕의 길에 들어 간 어떤 영혼들이 더이상 진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애덕의 결핍을 나타내는 비판의 정신과 경솔함과 방심의 증거인 다변(多辯)의 문제, 즉 수다떠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또 같은 결과를 빚어내는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 일을, 즉 다양한 일들을 한꺼번에 뒤섞어 하는 열성 또는 고민꺼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나도 이 모든 문제에 해당되고 있지 않는가? 실패작으로서 부분적으로나마 거기에 기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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