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발간도서

서론 - Ⅱ. 사학이란? 사학인 것과 아닌 것은?

handmaids 0 1,181 2010.09.06 11:19

Ⅱ. 사학이란? 사학인 것과 아닌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다. 사학가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사학은 단순한 문학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학은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사학가는 헤로도토스Herodotos로서, 메디아 전쟁, 다시 말해서 기원전 480년대부터 420년대에 일어난 그리스 도시들과 페르시아 왕들의 전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살아있는 자들의 증거를 통해서 과거를 새로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사학가의 예를 들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사학가 투키디데스Thukydides이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투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B.C.430-400) 평화 조약과 증언뿐 아니라 그 뒤에 내재하고 있는 두 도시 사이의 투쟁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설명은 전쟁이나 인간들의 갈등문제 등 인간들의 과거사에 신들이 개입한다고 설명하던 헤로도투스의 서술 방식을 탈피한 것이었다. 즉 투키디데스는 경제적, 군사적, 민족적, 사회적인 가설들을 설정하여 전쟁의 이유들을 설명하였다.
사학가는 원전을 베끼거나 하나의 소설로 완성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사실을 설명하고 이치를 따지는 데 목적을 둔다. 사학가는 과거에 대한 자신의 주관이나 개인적인 기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 현존해 있는 흔적들을 이용하는데, 그 흔적들은 흔히 원전, 친필 문서, 유품, 사진, 비디오 테이프, 심지어 증언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사학은 프랑스에서 사회학이나 민족학처럼 인간학으로 발전되었다. 지식, 사회, 정치에 대한 사학가의 역할은 특히 나치즘을 국가의 유산 속에 끼워 넣어야 했던 독일처럼 프랑스에서도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이제 사학을 인간학이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역사란 개인의 감정과 욕구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친필 문서, 유품, 사진 등 여러 가지 원전을 중심으로 참되고 살아있는 현실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있다.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까지도 사학가에게는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 대성당 벽에 있는 조각들은 단지 신비스럽고 상징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에 그치지 않고, 부차적인 지식과 다른 원전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중세시대 유럽인들의 문화와 사회, 정신세계와 종교세계를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학가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장인(匠人)이라고 볼 수 있다.
사학가는 수학가도 아니다. 그러나 사학가는 통계자료, 정보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 시대의 정신세계를 도출해 낸다. 예를 들면, 14세기에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던 흑사병과 백년전쟁을 그 당시의 정신세계를 뒤흔들었던 지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사학가는 장인처럼 자신이 가진 도구를 이용하여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망치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학가는 자신의 시간과 나날들을 도서실에서 또는 증언을 듣기 위해 거리에서 보낸다. 사학가는 찾고, 측정하고, 측량하고,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사학가는 소설가가 아니다. 우리는 나중에 사학이 어떻게 수녀원의 역사를 만드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나치 독일의 유대민족 말살사건을 오늘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사학가 덕분이다. 몇몇 사건 관계자들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사학가들의 측정, 측량, 기록, 분석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 즉 남녀노소 약 4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건 앞에서 사학가들은 구체적이며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일본 식민지시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학가들이 연구, 측정, 분석할 때 당시 식민지 생활 속에서 한국인들이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를 과학적으로 새롭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를 보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앞서 있는 어느 문화 민족의 번식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하나의 이념이 자행한 범행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기억할 수 있다.
프랑스 사학가들의 역할은 교과서 연구에 많이 기여하고 있다. 최근 교과서 연구 자료는 국가적 교만에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 유럽 사회인들이 될 학생들에게 오늘날의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하고 복잡한 세계에서 책임감 있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사학과 사학가의 위치는 프랑스 교육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사학은 학생들의 윤리 규범과 시민성을 동반하고 있으며, 프랑스혁명 이후 학교에서 종교 교육이 없어짐으로써 역사교수가 종교 교육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학과 역사, 역사와 지리는 분리될 수 없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텔레비전으로 인해 청소년의 사고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사학가들은 청소년들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사학가들은 공통적인 방법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기준만이 사학가의 작업을 인정하며, 이런 관점에서 사학은 하나의 학문, 다시 말해서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학의 중심적인 개체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거, 활동, 생각, 문화,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농부에서부터 위정자까지, 그리고 루이 델랑드 신부에서부터 교황 비오 12세까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학은 사람을 주요 개체로 하기 때문에 수학과 물리학이 소유하고 있는 확고한 이론을 가질 수 없다. 가톨릭 신학이 말하듯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과학적인 과정을 토대로 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학가는 과학자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사건에 대한 음모로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학가 앙뜨완느 푸호Antoine Prost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모든 사실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학술적인 차원은 서술적인 차원, 곧 이야기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학가는 자신의 생각을 항상 이야기체로 서술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우리가 소설을 쓸 때는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써나가지만, 사학가는 주어진 모든 자료와 상황을 분석과 비평을 통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꾸며간다. 사학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훌륭한 사학가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남이 자기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루이 델랑드 신부에 대한 증언이 중요하긴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비평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많은 증언을 듣고 수집한 후, 그 비평이 옳은 것인지를 문헌자료에서 찾아내는 것이 사학가의 일이다. 사학가는 무(無)에서, 즉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가끔은 살아있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사학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현실, 심지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사라지고 오직 문헌자료에만 남아있는 과거의 현실을 끌어내는 것이다. 사학가는 흔히 죽은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한다. 그리고 사학가는 이 수도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기관에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과거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인식에 힘입어 수도회의 미래를 가꾸어 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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