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발간도서

제1장 프랑스의 가톨릭 사상, 교회, 그리고 선교 -4

handmaids 0 1,142 2012.01.20 15:44
        선교 활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원했던 것처럼, 그리고 1930년대 비오 11세의 가톨릭 노동자 활동의 연속성 안에서, 현재 사복을 한 수녀들이 어려운 지역을 직접 찾아가 활동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봉사가 증거를 앞선다. 1962년의 예수성심시녀회 회칙을 보면, 예수성심의 나라에로의 초대는 도시나 시골에서 가난한 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선교사들의 약속임을 알 수 있다.

        공의회 문서와 선교 생활의 새로운 문제 제기와 진보를 제의하는 교황 요한 23세 회칙 'Mater et Magistra'(어머니와 교사)와 바오로 6세의 'Populorum Progressio'(민족들의 발전)에 의거하여 델랑드 신부는 갈평에서 바로 이런 사회복지사업을 하기를 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신앙과 실천이 사라지고 있는 산업도시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둔 비오 11세의 가톨릭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미 부산진성당(현 범일성당, 1924~1928년)의 노동자들 가운데서 이 일을 시작했다.

        이런 활동들은 1891년 레오 13세의 회칙 'Rerum Novarum'(노동 헌장)에 나타난 교회의 사회학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회칙에서 교회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이 통일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교회는 제3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희망했지만 자본주의가 더 우세했다.

        한편 프랑스 농촌의 수도생활은 1950년까지 대중문화에 스며들게 된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대중문화와 종교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다. 교회는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우상숭배로 여겨왔던 아시아의 조상숭배를 관대하게 대한다. 아시아에서 1939년까지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한 이유는, 로마가 17세기 마태오 리치Matteo Rici 시대부터 제기된 의례논쟁을 마감하면서, 특히 만주, 일본,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유교 예배 곧 조상숭배, 일본 황제숭배, 그리고 신토이즘에 대해 보여준 관대함 때문이다.

        1932년부터 포교성성의 새 장관 첼소 콘스탄티니Celso Constantini 추기경의 추진 아래 각 나라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는 사상이 나타난다. 각 나라의 문화를 교회에 수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 교회를 흡수시킨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신비체 신학은 1939년 10월에 비오 12세의 'Summi Pontificatus' 회칙을 발표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신학이 정립된다. 델랑드 신부가 읽었던 책을 통해서도 그가 이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유럽 교회는 자연종교나 각 나라의 전통에 대해서 아주 관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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