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발간도서

제1장 프랑스의 가톨릭 사상, 교회, 그리고 선교 -5

handmaids 0 890 2012.01.20 15:46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신앙생활 방식에 있어 평신도에게나 성직자에게나 놀라운 전환기를 의미한다. 종교는 관례 의미와 문화적 의미를 잃어버린다. 1950년대부터 프랑스인들은 가족과 문화에 의한 전수가 아닌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된다. 오늘날 프랑스 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비그리스도교화된 프랑스 사회 안에서 어떻게 신앙을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첫영성체는 이제 더 이상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단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보수적 경향과 성령쇄신운동이 결합된 진보적인 경향 사이의 단절을 강조하였다. 보수파의 위기는 특히 전례를 문제로 삼았다. 교회에서는 보수파의 미사를 허락하긴 했지만, 보수파는 신학적 문제에서도 교회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15년 전에 이미 로마교회와 분리되었다. 성령쇄신운동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성령의 움직임을 더 찾으려고 노력하는 운동으로, 이 운동에 의해서 새로 창설된 수도회는 성소자들이 증가하였다. 7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델랑드 신부는 활동에서든(갈평) 그가 항상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전례에서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움직임을 아주 놀랄 만큼 잘 실천하였다.

델랑드 신부는 그 시대의 어려운 통신교환에도 불구하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서도 교회의 여러 가지 변화를 따랐던 것이다. 그가 프랑스의 진보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에 있는 은인들과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서신교환 덕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정신으로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례부분이나 사회복지부분에서나 델랑드 신부는 공의회의 정신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으며, 75세(1969~1970)의 나이에도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선교사들처럼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같은 방법을 썼다. 1970년대 “성소위기”와 비그리스도교적 상황 앞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프랑스 깊은 시골에 있었다면 실천적이고, 단순하고, 쉬운 방식으로 일을 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로서 해야할 희생이 있고, 약한 자들도 약한 자로서 할 수 있는 희생이 있으며,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나는 몇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고 또 시작할 것이다. 웅장한 문장을 이용한 거대한 규칙 없이 실천한 그들의 희생은 기름처럼 천천히 퍼져나갈 것이다. 또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듯이 이 모든 것은 기도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만약 모든 사제들이, 각 본당마다 이처럼 시작한다면, 이 모든 것은 모든 사회계층 안에서, 모든 계급을 넘어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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