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발간도서

서 론

handmaids 0 1,132 2012.01.20 14:51
예수성심의 특전을 받은 시녀들은 다른 이들, 특히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는 ≪작은자들≫ (2001)을 사랑하도록 성심으로부터 양성을 받은 자들이다.
시녀들은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작은자들≫에게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자신들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그 사랑을 먼저 받았음을 말한다. 어떻게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는가? 하느님의 사랑을 맞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내적 준비인 아버지의 어린아이, 아버지의 자녀가 됨으로서 그 사랑을 받은 것이다.

≪“만일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 3) 는 말씀처럼 신뢰적 겸손을 갖는 다는 것은 어린이가 자신의 나약함과 순박함으로써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겸손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OD II, p.15)

시녀들은 어린이의 영성의 길을 보여 준 성녀 소화 데레사와 가난의 삶을 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에 따라 내맡김의 길과 가난의 길을 따름에 초대되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3.8)≫(OD II, p.16)

성녀 소화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는 시녀들의 기도의 삶의 가장 큰 스승들이다. 그들의 삶과 권고를 통해 시녀들은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맞이하는데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내적 조건을 배운다. 이 생명은 “나는 생명이요” 라고 하신 그리스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어린이의 정신, 가난의 정신, 내맡김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심을 배워나가야 한다.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연장이 됨으로서 또 다른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동반자, 그리스도의 도구들입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그들이 생명을 가지기를”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생명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몇몇 성인들은 그리스도의 어떤 하나의 모습, 예를 들면 가난, 순명, 희생 같은 것을 빛나게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녀들의 소명은 각자 개인의 소명이 아니라 바로 교회의 소명으로써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 주어야만 합니다.≫ (2009)

분명히 말하자면 시녀들은 자신을 버리고 헌신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며 제 2의 그리스도로 사는 소명을 받았다. 이렇게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공경한다.
그러므로 시녀들은 영성 수련 외에도 은총을 통해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으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아버지를 향한 사랑으로써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애덕의 능력과 소질≫ (2009)을 가꾸어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녀들은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의 음식, 즉 나무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는 육체와 흘려진 피로써 빵과 술을 형성하게 한 그리스도의 수난시기를 특별히 묵상해야 한다.
예수성심은 성체성사, 수난의 그리스도,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 그리스도, 사제-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삶과 사랑을 사는 것은 곧 삼위일체적인 삶과 사랑을 시녀들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봉헌된 영혼, 영원한 사제인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얼굴의 한 부분만을 재생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그의 삶, 그리스도 자체를 살아야 합니다.≫ (2009) 여기서 그리스도의 삶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세워진 델랑드 신부의 영성 생활은 한 마디로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인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라는 말씀을 현실화 하는 것 외, 다른 그 무엇에도 목적을 두지 않는다.
델랑드 신부의 모든 가르침은 기도와 사도직 생활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동일화를 실현하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델랑드 신부의 딸로서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 내어주며 그리스도와의 동일화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창설자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들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 관점에서 시녀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근접한 신앙의 경험자인 성녀 소화 데레사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영성의 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델랑드 신부는 자신의 큰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 두 성인들의 삶 안에서 가장 필요한 모습들을 받아들인다. 델랑드 신부의 큰 계획은 바로 시녀들이 수도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제 2의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완덕의 길은 시녀들의 모든 생활을 포옹합니다.
시녀들의 전 존재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내적 생활과 공동생활, 수도생활, 사도직 생활이 시녀들의 모든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2006)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인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랑, 그 사랑의 기원인 삼위일체를 언급한 뒤에 우리는 예수성심시녀회 보람의 여러 면을 관찰하면서 공적 삶(사도직 생활)을 보기 이전에 먼저 시녀들의 사적 삶(내적 삶)을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느 곳에서나 모든 것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볼 수 있는 시녀의 삶은 한 면에만 독점적이어서도 안 되고 구별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들은 서로 보충되어야 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내어주는 본질적인 두 방면의 그리스도의 삶을 표현해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삶은 사랑이신 그리스도, 성심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육화하신 그리스도, 삼위일체적 사랑을 드러낸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우리의 영성은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을 깨닫고, 육화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인성을 공경하고, 그분께 내 자신을 특별히 완전하고 온전하게 일치시키며, 제 2의 그리스도로서 그분의 삶을 온전히 재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른 이들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녀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삶과 죽음을 통해, 만약 시녀들의 삶에서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은총을 받았다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영원한 삶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은 완벽하고 항구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요약됩니다. 이 일치는 우리와 그분과의 일치, 그리스도를 위한 이웃들과 우리와의 일치, 특히 우리와 더불어 이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OD 2,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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