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영적원리

안나 0 258 2017.01.12 09:38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말한다. 혼자 살면 사람사는 맛이 안 느껴지고 외롭다고.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있고자하고 가정을 원한다. 혹은 친구를 원한다. 너희들이 사람사는 맛이라고 하는 그것은 자기존재를 잊게 하는 소란함이고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두게함으로써 관계성에 구속되게 함이다. 활동속에 자신을 던져놓고는 "나는 적어도 일하고 있다. 나는 적어도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다. " 라고 되뇌인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존재 밖의 세상에 관심갖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유인해왔고 성공해왔다. 그래야만 사람이 자기본질을 잊고 태어남의 목적을 잊고 세상욕망속에서 세상을 유지해주는 욕망의 군사로 일하기 때문이다. 수없는 세월동안 세상이라는 욕망은 가아들을 통해 욕망을 낳아왔다. 욕망의 번식을 해왔다. 죽음은 불행이다. 그래서 생명연장의 방법에 도전하고 병은 불행이다. 그래서 건강유지에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야한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할 수 없다. 언제 어떻게 사고가 터져 돈이 바닥날지 모르기에 각종 보험이 난무한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재산도 충분하다고 느껴보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나는 이미 충분한 돈을 벌었다." 라고 용기있게 말하기를 두려워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멈추면 낙오자가 된다. 그래서 쉴새없이 일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고 정신없이 휴가라고 가지만 휴가조차도 세상 일의 일부다. 그래서 휴가를 다녀와도 여전히 피곤하고 지친다. 세상사는 맛 이라고 하는 그 맛은 사람사는 맛 이라고 하는 그 맛은 사실은 존재하지않는 것이었다. 욕망의 충동에 밀려서 정신없이 뛰고 있는 현실일 뿐이다. 술이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돈이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사람이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일이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봉사가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사랑이 좋다하지만 그 좋음의 속은 비어있고 ... 좋다하는 그것의 속은 비어있어서 채워도 채워도 완성이 없고 공허감이라는 얼굴을 내민다.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었고 너의 태어난 목적을 잊었고 너의 갈 곳을 몰라서 행복하지 못한 네가 세상에서 누구를 도울 수 있으며 누구의 인생을 가치롭도록 가르칠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너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너의 존재 안에 답이 있다. 너 자신이 누구인지? 너의 인생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지못하고서는 너의 무엇도 가치로울 수 없다. 세상욕망은 멈춰본 일이 없으며 너는 그 욕망의 기계 속에서 작은 부속품처럼 소모되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의문을 가져야한다. 세상에 대해. 너 자신에 대해.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면 좋은 세상이 되려니 하는 기대는 늘 있어왔음에도 지금 이순간에도 반복임을 의심해야한다. 돈을 벌고 또 벌어도 몸이 부서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일 중독을 의심해야한다. 떠들썩하게 박수받는 세상 과학자들의 연구업적들, 생명연장에 인생을 걸어 온 의학 전문가들,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분주한 예술 전문가들, 다양한 옷을 갈아 입으며 죽고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세상의 문화들, 육신을 편리하게 해주고자 밤낮을 가림없이 수고한 전문가들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있는 상품들 앞에서 놀라운 기술을 선전하고 감탄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의심해야한다. 세상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너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너의 태어난 목적을 일깨우며 참 행복으로 향하게 하고 있는가를 의심해보아야한다. 적어도 너의 마음이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고 행복해졌는가를 의심해보아야한다. 그래서 노인이 되어갈수록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죽음을 두려워함이 아닌 목적지에 가까워져가는 사람의 설레임과 기쁨인가를 확인해야한다. 죽음은 바로 태어남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잘 죽기위한 태어남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하나인, 하느님 닮은 아름다운 자기본질을 깨닫고 돌아가기 위한 태어남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없었던 하늘나라에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망대로 살아보고 싶어서 하느님으로부터 가출한 인간이 욕망의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욕망을 깨닫고 원래 자기 고향으로, 자기본질로 돌아가도록 초대된 것이다. 욕망이 욕망을 낳는 욕망의 세상이다. 그래서 행복할 수 없었다. 곧 깨어질 유리그릇 같은 세상만족을 행복이라고 착각해왔을 뿐이다. 너 자신으로 돌아감이 행복이다. 부족함이 없었던 너의 본질. 욕망의 세상에서는 무엇인가를 행해야만, 무엇인가를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단 한번도 제대로 완성되어본적이 없는 신기루와 같음을 의심해야한다. 고요히 너 자신과 시간을 가져야한다. 홀로 있을 줄 알아야 잃어버린 길을 찾는다. 너의 마음 깊은 곳에 길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너는 혼자 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한다. 사람이 둘이되면 마음이 갈라진다. 홀로 있기를 겁내지 마라. 고요함을 겁내지 마라. 음악도 끄고 T.v도 끄고 세상 책도 덮고 휴대폰도 끄고 너의 말을 멈추고 세상을 향해 열어젖혔던 마음의 방문을 고요히 닫아라. 그러면 너의 본질을 향하는 문이 열릴것이다. 두개의 문이 동시에 열려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문이 열리면 하늘나라의 문이 닫힌다. 네가 길 진리 생명인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네가 하느님 닮은 아름다운 너의 본질을 만나고자 한다면 .. 네가 참으로 자유를, 영원한 행복을 원한다면...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세상의 문을 닫고 홀로 머물러라. 내가 너의 마음 깊은 곳에서 너를 만나고자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 세상욕망의 종살이 인생과 너의 본질에 이르는 영원한 생명의 삶 이 두개의 길이 네 앞에 놓여있다. 너의 선택대로 되어진다. 이 선택 앞에서 너의 가아는 혼란과 두려움으로 눈 감고 도망가고 싶어질것이고 너의 본질은 설레이며 기뻐할 것이다. 내가 너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문을 열어주기를.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너의 인생을 흔들어왔다. 세상 욕망에 잠든 너를 깨우기 위해 네가 집착하는 것들을 놓치는 기회, 잃어버리는 기회, 너의 기대를 뒤엎는 기회를 허락해왔다. 그래서 병을 얻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너의 재산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믿었던 이들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다양한 충격을 허락했다. 육신이 무너지면 어차피 놓을 일들과 욕심들이다. 그 날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오고 있다. 지금이 바로 마지막 날이라고 믿고 그 집착함을 던져본다면? 일에서 잠시 손을 놓아본다면? 마음의 분주함에서 떠나본다면? 사람들로부터 떠나본다면? 비로소 새파란 하늘이 보이고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을 느끼고 햇살의 속삭임을 들을 것이다. 네가 이미 보았다는 그 하늘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햇살도 아님을 깨닫게 될것이다.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면 너의 눈은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나를 보게 될것이다. 너의 본질을 보게 될것이다. 곧 천국이다. 영원한 생명이고 행복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너를 세상욕망속으로 끌어내고자하고 나는 너를 너의 마음 깊은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네가 마음의 귀를 기울인다면 나의 이 초대를 느낄것이다. 네가 너의 본질을 만나고나면 너는 비로소 자유다. 세상 어디서나 조화를 이루며 너의 하는 일을 완성하게 될것이고 너의 수고, 애씀없이 너는 세상의 빛으로 퍼져간다. 세상의 큰 변화가 시작된다. 성경속의 내 말을 깨닫지 못한다면 성경도 세상의 책과 다를바가 없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깨닫기 위해서이다. 글자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너의 본질, 진리, 하느님이라는 본질을 깨달아야한다. 성경이 바로 생명의 빵이다. 너희는 육신의 빵, 밀가루로 만든 빵 밖에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의 빵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믿었다는 유대인들 조차도 나를 따른다던 수많은 제자들조차도 나의 설교앞에 도망가버렸다. 알아듣지 못하면 도망가버린다. 진리앞에 선 인간이 혼란을 느끼고 두려워하며 결국 세상속으로 달아난다. 너의 이해가 나를 가리고 있다. 너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기를 포기해라. 그래야 나를 깨닫는다. 너의 이해라고하는 것도 고작 세상에 기초한 세상욕망이다. 이 욕망을 포기하지않는 한 너는 나를 참으로 볼 수 없다. 세상욕망으로 옷입혀놓은 인구수만큼의 가짜 하느님을 떠받들며 악세사리로 취급할뿐이다. 나는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만나고자 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하느님, 세상 지식, 학문이 만들어놓은 하느님 앞에 절하며 나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너는 악마의 자식이다. 내가 진리를 말하기에 너는 나를 믿지 않는다. 너의 아비가 세상욕망이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자 원해라. 세상진리가 아니라 참진리를 찾고자 원해라.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너의 신앙에 박해받아왔는지 너는 모른다. 대충 늙어가지말아라. 그냥 그렇게 그럭저럭 살다보면 연옥이고 천국가려니 착각하지말아라. 이미 너는 연옥살이중이다. 천국 앞의 삶을 살고 있다. 정신 차려라. 네가 누구인지? 네가 왜 태어났고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는다면 너는 나의 일꾼이 된다.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라. 지식으로 깨닫지 말아라. 거기에는 내가 없다. 너의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너의 이해도 내려놓고 나를 만나기를 원해라. 나는 너의 지식안에 없다. 나는 그 어떤 세상 언어에 담아지지않는다. 나는 너의 순수한 원의 안에서만 만날 수 있다. 눈을 뜨기를 원해라. 나를 그리워해라. 나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의 진심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나를 바르게 깨달으면 나는 수많은 나의 자녀들을 구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애써봐야 너는 고작 잠깐의 감동밖에 줄 수없고 그들은 다시 배고파진다. 그들은 또다시 다른 위안을 찾아 헤맨다. 이것을 왜 좀더 고민하지 않느냐? 네가 나를 만나기 전에는 네가 하는 그 어떤 훌륭함도 너의 만족에 불과하다. 너 스스로 만족하는 그것 역시도 세상욕망이고 너의 이기적인 만족이다. 나를 찾아라. 나를 원해라. 내가 너를 만나고자 수없는 세월을 기다렸다. 눈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지말아라. 나는 너의 눈을 뜨게 한다. 네가 이미 눈을 떴다고 .. 잘보인다고 주장한다면 너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나의 백성을 사기치는 죄. 너의 구원을 방치하는 죄이다. 나는 너의 본질이다. 그러나 너는 너의 본질을 잊고 너의 가아를 너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불완전한 너를 창조한 적이 없다. 나는 영이다. 나는 나의 본성의 모습대로 너를 창조했다. 불멸의 존재로 너를 창조했다. 죽음은 당연히 없는 영의 존재로 창조했다. 너의 욕망이 만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너는 육체를 가졌다. 쉽게 병들고 죽고 불에 타면 없어지고마는 육신을 너 라고 나는 창조하지않았다.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무엇이냐? 그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이야기일뿐이다. 내 말은 모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세상언어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중요한 진리는 글자 넘어에 있다. 성령이 그 의미를 끌어낸다. 너는 단지 글자를 읽을 뿐이지만 성령은 그 글자 너머의 진리를 열어준다. 글자에 갇히지 말아라. 성경은 성령만이 열쇠를 쥐고 있다. 그 성령이 움직이게 하려면 너는 너의 지식을 멈추고 어린아이가 되어서 반복반복 읽고 또 읽어 그 글자가 녹아내려야한다. 고체가 액체가 되고 기체가 될때까지 인내롭게 읽고 또 읽어라. 깨닫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어라. 너는 장님이고 귀머거리다. 그러니 끝없이 읽어라. 반드시 진리가 열릴것이다. 너의 본질인 나를 만날것이다. 사람들이 잠깐 변하는 모습에 너의 인생의 의미를 두지 말아라. 그들은 결코 변한것이 아니다. 나의 진리를 만나기 전에는 모두 표피적 변화이고 다시 목말라지고 병든다. 정신차려라. 참으로 네가 영혼들을 돕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나를 만나라. 그러면 너는 진리를 깨닫고 세상 어떤 의문도 다 풀어낼 지혜를 갖춘다. 내가 너와 하나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것도 너를 구원할 수 없다. 너의 신분도 너의 앎도 너의 수고도 ... 오로지 내가 너를 구원 할수있다. 이런 나를 네가 목격해야만 너는 구원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다시 읽어라. 깨닫기까지 성경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어라. 입을 다물어라. 내가 하느님을 네가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너는 결코 입을 열고 싶어지지 않을것이다. 네가 나를 온전히 만나고나면 네 의지는 사라지고 너의 몸과 마음은 오로지 나에 의해서만 움직여질것이다. 바오로 사도 처럼. 내가 나의 교회의 반석으로 세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냐? 나를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호통을 친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가아다. 세상욕망에서 태어난 육체라는 그릇에 담겨진 성격, 신념, 습관, 지식등등을 내용물로하는 네가 너라고 철저히 믿는 가아다. 이 가아를 향해 던진 말이다. 나는 너에게도 말한다. 너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너는 욕망이 아비인 욕망의 자식이라고. 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욕망에 뿌리를 박은 가아에 속아 산다. 너의 참본질은 너의 내면 깊은 곳에 갇혀서 신음한다. 자유로워지고자 외친다. 나를 믿으면 죽지않는다는 말이 무슨 소리냐? 바로 너의 본질을 깨닫고 본질로 돌아감이다. 죽고나서 가는 천국이 아니다. 너는 영이다. 내가 영이듯이. 네가 깨닫고나면 너는 영의 상태, 본질의 상태를 이미 누린다. 이것이 천국이다. 하늘나라는 이미 와있다. 네 안에 이미 있다. 깨달아야한다. 영지주의니 이단이니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지말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라. 나는 그어떤 종교에도 이념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를 두고 종교재판한답시고 소란을 떨지마라. 과거에 나는 이미 너희들 손에 죽었다. 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나는 모든 영혼의 주인이다. 너의 인생의 시간도 끝나간다. 나이순서대로, 건강순서대로 죽지 않는다. 정신차려라. 지금 준비되고자 원해라. 죽어서 천국가려니 연옥이려니 망상하지말고 지금 여기서 깨달아 천국을 누려라. 그래야 천국이다. 나를 믿는다는 인간이 어째서 영원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느냐? 나를 믿는다는 인간이 어째서 사건이 터지면 믿지않는 이들과 전혀 다름없이 기도하느냐? 바르게 깨닫고 복음의 내용이 삶의 기준으로 서도록 도와라. 복음이 신화로 죽어있게 하지 말아라. 복음을 살지 못하는 것을 의심하고 답을 찾아라. 나의 복음은 이미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본질을 모르고서는 답이 안나온다. 나의 복음은 본질만을 이야기한 은유다. 너의 욕망때문에 은유일뿐이다. 네 욕망이 사라질수록 성경이 알몸으로 드러날것이다. 너의 욕망이 나의 쉬운 길을 가렸다. 나를 복잡한 학문 속에 가두어놓았다. 나는 학문이 아니다. 나는 신학이 아니다. 나는 종교가 아니다. 나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 네가 나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는 네가 나의 백성들 앞에서 놀아나며 스스로 만족하고 사람들의 칭송으로 위로받는 너의 불쌍한 소꿉놀이를 하염없이 구경해야할것이다. 나를 동정해라. 너의 사랑을 너의 깨달음을 구걸하고 있는 나를 동정해다오. 너는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웃는다. 나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에게 눈이 멀어서 아무도 나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 내가 외롭다. 내가 슬프다. 구원에서 멀어져가는 나의 자녀들로 인해 내가 슬프다. 나의 교회와 세상이 다를것이 없는 현실이 슬프다. 나는 너를 구원하고자 한다. 네가 먼저 구원되기를 원해라. 그러면 내가 이런 너로 인해 세상을 구할수있다.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주어라. 나는 대단히 쉬운 지름길을 알고있다. 나는 이 길을 너를 통해 알리고자 기다려왔다. 남녀노소 .. 지식과 무관하게 모든이들이 구원되는 쉬운 길, 단순한 길을 너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너의 그 어려운 방법을 포기해라. 너의 그 방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다.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술에 불과하다. 나는 너를 구원하러왔다. 너를 구원하러 온 때를 알아보지 못해서 내가 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사람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태생소경에게 구원자를 알렸던 바로 그 사람이다. 너는 어디에 서 있느냐? 너 어디 있느냐? 성경을 다시 읽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너의 은 몸과 마음이 생수의 강에 빠져 본질의 기쁨을 만날 때까지. 욕망의 세상도 미쳐가고 있고 나의 이름을 간판으로 걸어놓은 교회라는 세상도 욕망으로 미쳐가고 있다. 나의 자녀들이 혼란스러워하며 길을 찾고 있다. 교회에서 조차도 답을 못찾아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너를 통해 이들을 살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네가 먼저 눈을 떠야한다. 세상욕망에대해. 나의 진리에 대해. 너 자신의 가아에 대해. 성경을 읽어라. 거기에 무슨 소리가 있는지 깨달아라. 그리고 너의 본질을 만나라. 나 없이는 네가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 내 말 안에 머물러라. 진리를 깨닫게 될것이다. 그러면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할것이다. 자유롭지 않은 너의 현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행복하지않은 너의 현실을 당연하게 여기지마라. 너는 당연히 자유로워야하고 당연히 행복해야하는 나의 사람이다. 너의 본질로 돌아가라. 이것이 너의 태어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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