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삶(JPIC)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주님거울 0 123 2017.11.26 09:34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낙태죄가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한 쪽의 목소리만이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흘러나옵니다.

 

 

심지어 이런 선전 영상도 있고

젊은이들이 접근하기 쉬운 SNS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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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는 자유롭게 해도 되고,

그러다가 임신을 하면

낙태약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면 된다는 성적 가치관이

이 홍보 영상물의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책임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이런 홍보물이 영상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청소년과 청년들은 이런 내용에만 압도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낙태는 당연한 여성의 권리라는 인식이 생기기 쉽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과 행동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오늘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미사 독서 말씀입니다.

 


그 무렵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마카베오기 상권 (2:15-22)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마타티아스의 말이

 

참 오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벗어난 분들, 

대표적으로 대수천(대한민국 수호 천주교  기도모임)과 천주교 뉴라이트회 등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만을 옹호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태아가 죽거나 말거나 이분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아래와 같이 사시면서

이것이 옳다고 철썩같이 믿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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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7.11.23) 서울구치소 앞을 지나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또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분들,

8-90년대 학생운동을 하시고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하신 분들 중 상당수는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 자유이고 진보이며

여성의 인권이라고 생각하시면서

낙태 찬성, 낙태죄 폐지 찬성의 편에 서십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야 그러나 낙태는 찬성해"

이 입장을 고수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분들은

"복음의 기쁨"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책을 상당히 열심히 읽으셨고

이 책에 감동도 하시고

이 책의 중요 구절을 필요한 경우 자주 인용하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대체로 제도 교회와 왜곡된 경제 체제를 비판할 때 인용하는 구절인데

보통 아래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사람들은

자유 시장으로 부추겨진 경제 성장이 세상을 더욱 정의롭게 평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낙수효과(trickle down) 이론을

여전히 옹호하고 있습니다.

사실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이러한 견해는

경제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와 지배적인 경제 제도의 신성시된 운용 방식을 무턱대고 순진하게 믿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 54항) 

 


그런데 왼쪽으로 벗어나 있는 분들에게는 같은 책에 있는

아래의 내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교회가 특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자 하는 이 힘 없는 이들 가운데는,
자신을 방어할 힘이 전혀 없고 무죄한 태아가 있습니다.


최근들어, 태아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낙태를 부추기는 법을 통과시키는 등
태아의 인간 존엄성을 부인하고
제멋대로 태아를 다루려는 시도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가끔 태아의 생명을 수호하려는 교회의 노력을 비웃으며
교회의 입장을 관념적이고 반계몽적이며 보수적이라고
비난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이러한 수호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인권 수호와 밀접히 관련됩니다.


이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발달 단계에서
언제나 신성불가침의 존재라는 확신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확신이 사라지면,
인권 수호를 위한 견실하고도 지속적인 토대도 없어져,
인간의 권리는 늘 권력자의 편의에 번번이 휘둘릴 것입니다.


이성만으로도 모든 인간 생명이 지닌 불가침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신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온갖 침해는 하느님의 응징을 초래하는 것이며,
그 개인의 창조주에 대한 범죄입니다.

바로 이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회 메시지의 내적 일관성과 관련되므로,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와 관련하여 전적으로 솔직하고자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개혁이나 현대화에 대한 어떤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인간 생명을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진보적인 것도 아닙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매우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은 낙태가 그들의 극심한 고뇌를 덜어주는 신속한 해결책으로
보이는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이 강간의 결과이거나
극빈의 상황에 있을 때가 특히 그러합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복음의 기쁨 169쪽-170쪽)

 

 

 

 

예수님을 스승으로 섬기는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

낙태 찬성, 낙태죄 폐지 찬성의 입장에 서는 것에 전혀 모순점을 느끼지 않는

왼쪽으로 많이 벗어나 있는 분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오늘 미사의 독서 말씀에 포함된 아래의 마타티아의 선언이

참으로 가슴 깊게 와닿습니다.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성경과 우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오른쪽 눈이나 왼쪽 눈, 한쪽 눈으로만 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이외의 내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고,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이 따르면서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더러 나와 내가 옳다고 믿는 그 생각을 지지하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한 명도 이런 태도를 고수했었습니다.


낙태는 막아야 합니다.


특히 지금 우리 나라 상황의 경우처럼,

이성교제하면 한 달 안에 성관계는 당연히 하고

그러다가 임신하면 남자가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치고

여자 홀로 모든 책임을 떠 안은 상황에서 하게 되는 낙태는 정말로 막아야 합니다.

남성에게 그 임신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안을 마련한다면

이런 종류의 낙태는 충분히 막을 수가 있습니다.


미혼부 책임법,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에서 강력하게 시행되는 법입니다.


낙태는 해결책이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아래는 낙태후 고통스러워하는 여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제작된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기념비(Memorial for Unborn Children) 조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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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의 손끝에서 용서와 치유가 느껴집니다.

    

 

슬로바키아의 젊은 예술가 마르틴 후다첵은  

‘낙태 후 스트레스 증후군(PAS, Post-Abortion Syndrome)’을 겪는 이들을 위한 조각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이 조각상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도저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자신도 기도를 꾸준히 올렸고,

또 많은 분들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형상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용서의 이미지는 내 안에서 점점 더 또렷해졌습니다.

제 안에 용서의 이미지는 바로

울고 있는 어머니와 그녀를 위로하는 아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다첵에게

‘이 조각상이 바로 제 모습이에요’라고 말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 조각상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낙태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입니다.

 

낙태 예방


그리고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어머니와 그 태어나지 못한 아이 사이의 용서 화해 치유의 여정을

동반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낙태죄 폐지라는 세상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가톨릭 교회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라고

선언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사랑과 책임 연구소) 

http://cafe.daum.net/veritascar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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