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의 길

예수성심시녀회는 자애로우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고 이 세상에 예수성심의 나라가 임하시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1935년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에서 루이델랑드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 손안의 연장' 이라는 모토 아래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성심을 전하는 소명을 살아가고 있다.

예수성심시녀회의 설립자인 남 루이델랑드 신부는 1923년 6월 5일,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시기에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고, 5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사목하면서 남다른 믿음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사랑으로 안아 주었다. 남 신부는 용평본당에 부임하여 얼마 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 줄 이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1935년 12월 8일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기를 원한 여섯 명의 동정녀가 남 신부의 인도로 동정을 지키며 공동생활을 할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신(信)·망(望)·애(愛), 삼덕(三德)이 머무르는 곳’ 이라는 의미를 가진 ‘삼덕당’ 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예수성심시녀회는 이렇게 겨자씨와 같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많은 새들이 깃들일 나무로 자라날 희망을 안고 시작된 것이다.

남 신부는 삼덕당을 시작할 당시 하느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특별한 정신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에 뚜렷이 그려져 있었던 공동체의 모습은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시녀들의 단체였기에 공개적으로 서약을 하는 여섯 동정녀들에게 “예수성심의 시녀들”이라는 명칭과 사제들을 보좌하는 소명을 주었다. 그리고 몇 달도 되지 않아서 섭리는 이 동정녀들에게 양로원, 고아원, 교리학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에 대한 구제사업을 시작하도록 허락하셨다.

이렇게 시작된 공동체는 박해와 일본인들에 의한 투옥(4개월 동안 12명), 전쟁 중의 궁핍(1940-1945), 내란의 공포(1946-1949), 재산의 상실(농지개혁법) 등을 포함한 수많은 시련 속에서 가장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의 봉사에 헌신함으로써 예수성심의 사랑을 증거하게 되었다. 보육원, 양로원, 무료진료소, 무료급식소, 나환자 정착촌..... 시작할 때마다 그 일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은 그는 주어지는 대로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어떤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던 1967년 제철 공장의 후보지로 포항이 선정되면서 수녀들을 포함한 800여명의 사업체 가족들이 이사를 해야 했다. 포항에 정착한 후 18년 동안 황량했던 모래펄을 심고, 가꾸고, 다듬어 초록빛 ‘평화의 계곡’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 그 보금자리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남 신부는, “우리 사업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고, 순전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교회의 사업이니 하느님께서 이대로 끝내지는 않으실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사업이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이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걱정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착한 어머니의 사업은, 하느님의 온정 넘치는 섭리에 대한 사랑과 공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의심치 말고, 기도와 섭리에 대한 신뢰, 비천한 사람과 불우한 우리 가족들에 대한 사랑으로 결합하여 있자”고 수녀들에게 당부하였다.

남 신부가 “주님 손안의 연장” 이라고 정의를 내린 시녀들의 사도직 목표는 가난한 이들의 환경을 향상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당신 왕국에서 누릴 행복을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적 사랑을 그들과 나누어, 주님 손안의 착한 연장으로서 그들이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게 하는 데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예수성심시녀들의 사랑은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시녀들의 깊은 체험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치러야 하는 어떤 종류의 희생이라도 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예수성심의 시녀들은 언제 어디서나 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사도직을 선택하여 봉사해야 할 지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제1시기
여섯 동정녀의 선택 (삼덕당 1935~1950)

70년전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남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대영)신부가 영천 용평 본당 신부로 있을 때, 본당 활동에 적극적이던 동정녀 6명이 1935년 12월 8일 동정 서원을 서약하고, 남 신부는 이들을 "삼덕당" 이란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다. 하느님의 섭리는 당신의 일을 할 도구로 순진한 처녀, 부스러기 여섯을 선택하였고, 이는 곧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가 되었다.

제2시기
주님 손안의 연장 (송정 1951~1969)

하느님의 섭리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셨다. 설립자 남 신부는 오로지 수도회와 사업체를 위하여 일하도록 본당사목에서 면제받고, 투철한 선교 정신으로 미개척지를 찾아 1950년 3월 25일, 포항시 영일만의 송정해변가(현 포항종합제철)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고아, 양로인, 장애인, 나환우들을 돌보며, 인근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 때 6.25의 민족수난을 수도회와 함께 겪었다.

제3시기
맨 끝자리에 앉으시오 (대잠동 1970~1992)

1968년 이후 정부 시책에 따라 본 수녀원 자리에 포항 제철이 들어서게 되자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앞에서 남 신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마련하실 모양인데마는..." 하시며 기꺼이 응하였고, 본원은 포항시 대잠동으로, 수련원은 대구시 대명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제4시기
예수성심의 나라가 임하소서 (대명동 1993~2009)

수도가족이 늘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집이 부족하여 제6차 총회에서 여러 안건과 대안들을 놓고 고심한 끝에 본원을 옮기기로 하고 땅을 물색하였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여 수련원이 있는 대구광역시 대명9동 475번지에 1992년 본원을 신축, 이사하여 7차 총회를 열었다.

제5시기
가자, 섭리의 땅으로! (관구설립 2009~)

수도회 규모가 커짐에 따라 계속 제기되었던 관구 설립을 제11차 정기총회에서 회헌개정과 함께 결정함으로써 대구관구, 부산관구, 서울관구로 나누어 통치하게 되었으며, 2008년 10월 15일 관구장 임명, 2009년 2월 제1차 관구회의를 통해 하느님의 새 일을 향한 힘찬 도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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