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강에 사는 담수 돌고래. 핑크색이 진한 수컷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 돌고래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더욱 핑크색으로 착색되는데, 핑크색이 많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이 싸우고 활동성이 좋다는 의미. 암컷들에게 더 어필하는 이유다.
아마존 유역에는 핑크 돌고래에 대한 전설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전설도 핑크의 유혹에 관한 것이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에 핑크 돌고래 수컷이 멋진 남자로 변신해 모자를 쓴 채 강둑 위를 멋들어지게 걸으며 마을의 인간 여성들을 유혹한다는 전설이다. 그러고 보면, 핑크는 여자 색이 아니라 남자 색이었던 것이다.
핑크 돌고래는 돌고래 중에서도 두뇌가 좋고 친화력도 좋아 인간들과 자주 어울린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멸종위기종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아마존 강에 사는 핑크 돌고래의 10~15% 남짓이 죽었다. 지금도 계속 사체로 발견되는 중이다. 아마존에 가뭄과 폭염이 닥쳐 강 온도가 거의 39도에 육박, 돌고래 체온보다 높기 때문이다. 강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다. 120년 만의 가뭄으로 강물이 마르고 수로가 끊겨 지역에 사는 토착민 50만명이 물, 식량, 약품 등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번 가뭄으로 유추하건대, 열대우림의 티핑포인트가 이미 무너진 게 아닐까 우려한다.
핑크색이 아니라 잿빛으로 변한 돌고래 사체 사진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쪽에선 폭격과 학살로 민간인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또 한쪽에선 이렇게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핑크 돌고래들이 죽어간다.
지난 600일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민간인보다 지난 30일 동안 가자에서 죽은 민간인이 더 많다.
맥스 아일은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후위기 대응은 군사력 축소와 식민 지배 청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얼추 동의한다. 군수 물자의 탄소배출량은 사실 두 번째 문제이고, 적대와 전쟁이 우리의 시야와 우리의 이야기를 피비린내나는 전선으로 무작정 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에너지 부족으로 기후의제 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화석연료 소비량이 껑충 뛰어올랐다. 엑슨모빌을 비롯한 화석 자본들은 천문학적인 떼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니까 폭격과 학살이 일어나면, 기후-생태 재난에 대한 글로벌 합의 추진은커녕 지구의 귀퉁이들이 무너지고 무수한 생명들이 멸종되는 과정마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최상의 기후 대책이란 곧 평화인 것이다.
핑크가 사라진 아마존은, 핑크 전설이 사라진 지구는 또 얼마나 황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