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루이델랑드 신부는 1922년 12월 23일 파리외방전교회의 사제로 서품되어, 1923년 4월 16일 파리를 출발, 그해 6월 5일 부산항에 도착함으로써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에서 본당사목에 전념하다가 1935년 현재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예수성심배종회를 설립하고 여섯 명의 동정녀들을 모아 삼덕당(三德堂)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은 초가집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병든 할머니 한 분과 두 명의 어린 고아를 데려다 함께 생활하면서 사회사업을 시작하여 1946년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을 공식 설립하였고, 1950년 본당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수도회 설립에 전념하여 지금의 예수성심시녀회를 있게 했다.
수도회가 자립함에 따라, 1965년 은퇴한 신부님은 경북 포항시 갈평리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 활동을 계속하였고, 1972년 10월 24일 사제 서품 50주년인 금경축을 지낸 그해 11월 17일 새벽, 77세의 생을 마치고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셨다.
공의회가 주는 혼란스러움에 당황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늘 ‘지적 영양실조’에 빠지지 않으려고 혼자서 연구하고 노력한다.
그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책상 앞에 앉아서 세계일주를 하고, 은인들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으면 또 다시 은인들에게 서신을 보낸다.
갈평에 있는 그의 작은 한옥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하여 노르망디 해안과 뉴질랜드, 캘리포니아의 해안을 거닌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인 선교 활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 이 모든 신뢰와 사랑을 주님 손안의 연장으로서 그가 가장 사랑한 그의 딸들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루이 델랑드는 바로 예수성심시녀회의 수녀들이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수녀들 안에 살아있다.
『사랑의 선교사 루이 델랑드(1895~1972)』중에서
시브르 올리비에 지음